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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하루

2007.12.13

by haru~^^ 2020. 9. 22.

일요일 세수만 간단히 하고 자는 아이는 잠옷 차림 그대로 깨워서 시댁에 점심 먹으러 갔다.

결혼한지는 꽤 됐지만 할 줄 아는 건 별로 없다는 걸 아는 우리 아버님께서 그냥 만들어 놓은 추어탕만 끓여서 먹으면 된다고 나를 안심시켜주신다. 냉장고에 있는 각종 반찬들 꺼내놓고 밥도 미리 안쳐 놓으셔서 진짜 차리기만 하면 되는 점심상이었다. 

그렇게 밥 다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그냥 싱크대 상부장을 봤다. 유리로 되어 있어 안이 보이는데 쓰지 않는 유리컵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그 자리에서 수 없이 설거지를 했지만 처음 보는 메모지 한 장.

어머님 메모

 

'2007년 12월 13일 밥솥 바킹 바꿈' 2007년이면 난 우리 신랑 만날 때도 아니고 우리 어머님 돌아가신 때도 아니다. 우리 어머님은 내가 결혼하고 3년 차 되던 해 우리 아이 세 살 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많이 편찮으셨다. 우리 결혼식 참석도 가능할까 걱정했었는데 강인한 정신력으로 결혼식에 촛불도 켜주시고 끝까지 버텨 주셨다. 그리고 힘드셨는지 병원에 입원하셔서 신혼여행 다녀와선 병원으로 인사를 드려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 아이 첫 돌잔치까지 잘 버텨주신 우리 어머님... 우리 아이가 물고 있던 쌀과자 한 입 베어드 신게 마지막 음식이셨다. 끝까지 삶을 지키고자 버티셨던 어머님께서 병간호하던 신랑한테 '그래 네 아들 돌잔치까지 보고 많이 버텼다'라는 말씀 남기시고 점점 위중한 상태가 되셨다. 초점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우리 아이가 가면 아이 쪽으로 고개가 돌아가 아는 체를 하셨던 어머님... 돌아가셔서 장래를 치를 때 어머님이 아니라 한 여자로 봤을 때 그 삶이 너무 가여워서 더 많이 울었더랬다.

 

어머님이랑 나는 내놓을 만한 추억이란 게 없다. 내가 신랑을 만나기 전부터 편찮으셨기 때문에 같이 외출한 거라곤 우리 아이 돌잔치 때 입을 한복 사러 잠깐 다녀온 게 다니까. 가끔 형님이 어머님이랑 했던 일들을 얘기 하심 철없이 부럽기도 하다. 형님 얘기나 신랑 얘길 들어봐도.. 내가 겪은 어머님은 보통 시어머님과는 조금 달라서 계셨다면 철딱서니 없는 내가 많이 의지하고 믿고 따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늘 난 어머님이 편찮으지 않으셨다면... 이란 생각을 많이 해본다. 

그런 내게 오늘 발견한 저 메모는 아프지 않은 어머님께서 밥솥 바킹을 바꾸시고 기억해 둬야지 하는 그저 평범한 주부였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이제 난 편찮으시지 않았던 어머니와 기억을 하나 같이 가질 수 있게 된 거다.

 

밥솥 바킹 바꿈

2007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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